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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의 착시 속 숨겨진 숫자들
어느새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기가 되었다. SNS에는 연초에 세운 목표를 얼마나 이뤘는지 돌아보는 글들이 올라온다. 개인도 이렇게 1년을 정산하는데, 정부 역시 한 해 동안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체계적으로 점검하고 평가할 테다. 그리고 매년 빠짐없이, 정부는 높은 성과 달성률을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다만 발표된 수치만큼 우리의 일상이 실제로 나아졌는지는 늘 의문이 남는다. 숫자 뒤에 가려진 행정의 착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과거 한 참여 거버넌스 사업에서는 시민들이 공론장에서 치열하게 토론했지만, 실제로는 사전에 정책이 정해진 상태에서 수만명이 참여한 결과물인 것처럼 포장된 사례가 있었다. 청년 10명 중 3명이 이른바 ‘쉬었음’ 상태에 놓인 현실을 해결하는 데에도 비슷한 방식이 동원될 수 있다. 양호경에 따르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리는 대신, 구직 지원금 등을 통해 청년을 ‘구직 중’ 혹은 비정규직 상태로 전환하면 통계상으로는 상당수가 ‘쉬었음’을 벗어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실제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착시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특히 주택 정책에서 두드러진다. 정부는 올해 건설·매입임대를 포함해 5만호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밝혔지만, 연말을 앞둔 시점의 결과 자료를 보면 목표 달성은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다. 서울시의 매입임대주택 역시 2024년 기준 예산 대비 집행률이 50% 수준에 머물렀다.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반복되어도 달성 여부에 대한 명확한 평가 없이 해를 넘기고, 새해가 되면 또다시 새로운 청사진이 제시된다.
주택 정책에서 착시가 반복되는 이유는 사업 추진 과정 곳곳에 행정이 조리할 수 있는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예산 편성부터 사업계획 수립 및 선정, 집의 준공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며 단계마다 실적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집행 가능성과 무관하게 예산을 책정하는 것만으로도 성과에 포함되거나, 민간 협업 사업의 경우 실제 추진 여부와 관계없이 선정 사실만으로 실적으로 발표되기도 한다. 예컨대 ‘특화형 임대주택’은 작년에만 6000가구가 선정되었다고 발표되었지만, 여러 사정으로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현장에서 정책이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점검하지 않은 채, 서류에 그럴듯한 숫자만 채워가는 관행이 이어진다면 시민에게는 매번 또 다른 신기루만 제시될 뿐이다.
이번 정부는 행정을 실효성 있게 작동시키는 역량이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인수위원회 없이 출범한 만큼, 첫해에는 집행 체계를 정비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행정 조직이 말초까지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착시를 만들어내는 수치가 아니라 시민의 일상을 실제로 바꾸는 성과를 만들어내야 할 시점이다. 숫자를 채우는 행정이 아니라, 삶을 바꾸는 숫자를 보여주기를 기대해본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512141956005/amp